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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거리에서 예술과 역사를 만나다

by ommg 2025. 8. 4.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여행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수많은 전쟁과 재건을 겪으며 예술과 역사의 풍경을 동시에 품은 도시로 성장해왔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만나는 요충지에 위치한 이 도시는 발칸의 교차로 역할을 하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명이 남긴 자취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 글에서는 베오그라드의 중심 거리와 골목을 따라 예술 작품과 역사 유적을 체험하는 여정을 안내하며, 걷는 그 자체만으로 도시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도보 코스를 소개한다.

발칸의 심장, 베오그라드를 걷는다는 것

베오그라드(Belgrade)는 단순히 세르비아의 수도라는 행정적 정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도시다. 이곳은 과거 로마 제국의 요새 도시였으며,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에서 수차례 전쟁과 점령을 겪었다. 그리고 20세기에는 유고슬라비아의 중심지로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민족주의가 교차하는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수백 년 동안 다양한 문화, 종교, 언어가 충돌하고 융합되며 베오그라드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가 된 도시다. 그러나 베오그라드는 단지 역사적 비극이나 전쟁의 상처만으로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이 도시는 시대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거리에는 생동감 넘치는 그래피티와 음악, 미술이 넘쳐난다. 베오그라드 사람들은 삶의 중심에 예술을 놓으며, 예술은 이 도시에 쉼 없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이 도시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거리를 걸으며 그곳에 깃든 예술과 역사를 직접 몸으로 느껴야 한다. 베오그라드는 도보 여행자에게 매우 매력적인 도시다. 중심가는 대부분 평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명소들이 도보 20~30분 이내에 밀집해 있어 시간 대비 밀도 높은 여행이 가능하다. 특히 구시가지인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는 도보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루트가 된다. 거기에는 고대 로마 유적부터 오스만풍 건축, 사회주의 시대의 모더니즘 건물, 그리고 현대 스트리트 아트까지 모든 것이 한 거리에 혼재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베오그라드에서 하루 혹은 이틀간 충분히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예술과 역사 중심의 도보 여행 루트’를 소개하려 한다. 단순히 어디를 가야 할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길 위에서 어떤 감정과 사유가 가능한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여정이다. 도시가 품은 수천 년의 이야기를 현재의 거리에서 만나는 경험, 그것이 바로 베오그라드 도보 여행의 본질이다.

 

예술과 역사의 현장을 걷는 베오그라드 도보 루트

베오그라드 도보 여행의 시작은 단연코 ‘칼레메그단 요새(Kalemegdan Fortress)’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만나는 지점의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 요새는 도시의 방어를 책임지던 전략적 요충지이자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산책 명소이다. 로마 시대의 유적부터 오스만 제국의 흔적, 그리고 19세기 세르비아 독립 전쟁 때의 흔적까지 함께 존재하며, 성곽 위에서 바라보는 두 강의 합류 지점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적 장면을 보는 듯하다. 요새를 내려오면 곧바로 ‘코사니치브 베나츠 거리(Kosančićev Venac)’에 닿는다. 고풍스러운 석조 계단과 낡은 건물들, 그리고 골목마다 설치된 공공 예술 조각이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했던 이 거리에는 작은 갤러리와 서점, 수공예품 가게들이 모여 있어 예술적 영감이 살아 숨 쉰다. 특히 폐허가 된 건물을 캔버스 삼아 그려진 거대한 그래피티 벽화는 도시 재생과 예술의 접점을 잘 보여준다. 그다음 목적지는 베오그라드의 중심이자 상업과 문화의 요지인 ‘크네즈 미하일로 거리(Knez Mihailova Street)’다. 이 보행자 전용 거리는 고딕, 신고전주의,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거리 공연, 화가들의 초상화 그림, 아코디언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은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살아 있는 거리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크네즈 미하일로 거리 끝자락에는 ‘국립박물관(Narodna Muzej)’과 ‘국립극장’이 마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문화 예술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의 세르비아 문화로 이어졌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국립박물관에는 고대 일리리아 유물부터 피카소와 르누아르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 시간의 흐름을 예술로 따라갈 수 있다. 이제 골목 여행을 원한다면, 스카다를리야 거리(Skadarlija Street)로 향할 차례다. ‘베오그라드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이 거리에는 돌길 위에 테라스 레스토랑과 전통주점, 문인들의 흔적이 남은 공간이 가득하다. 19세기 세르비아 시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가 골목 곳곳에 스며 있다. 밤이 되면 라이브 집시 음악과 세르비아 전통 요리, 촛불 아래에서 펼쳐지는 연극적 분위기까지 더해져 여행자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예술적 감흥을 현대적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사바말라(Savamala)’로 향하자. 이곳은 한때 쇠퇴한 항만 산업지구였지만, 지금은 세르비아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실이자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창고와 버려진 공장 외벽에 펼쳐진 거대한 벽화, 개조된 컨테이너 갤러리, 밤마다 열리는 전자음악 파티까지, 사바말라는 베오그라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역사와 상처 위에 새로 피어난 창작의 에너지는 여행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도보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는 '성 사바 성당(Hram Svetog Save)'을 추천한다. 동유럽 최대 규모의 정교회 성당으로, 백색 대리석과 금빛 돔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아직 일부 공사 중이지만, 모자이크와 조명이 어우러진 천장은 신성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압도적이다. 도시의 중심에서 영적인 고요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도시의 결을 따라 걸으며 느끼는 예술과 기억

베오그라드의 도보 여행은 단순한 ‘관광 코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도시는 길 위에 역사의 흔적을 남겼고, 예술가들은 그 자리에 자신의 감정을 덧칠했다. 걷는다는 것은 단지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 도시가 품은 무수한 이야기 위를 직접 디디는 일이다. 우리는 걷는 동안 이 도시의 여러 얼굴을 마주한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물 옆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옛 제국의 흔적이 남은 건물 아래에서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낙서를 한다. 크네즈 미하일로 거리의 웅장한 유산과 사바말라의 자유로운 창작 정신이 하나의 시간대에 공존하는 곳. 그것이 바로 베오그라드이다. 이 도시는 쉽게 설명되거나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걸음을 멈추고 벽화를 바라보며, 폐허 속에 핀 생명을 보며, 조용한 성당 안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여행자는 어느새 이 도시의 일부가 된다. 관광객에서 체험자로, 관찰자에서 공감자로 변모하는 순간이 있다면, 베오그라드에서의 도보 여행이 바로 그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아마도 이 여행 후에는, 다른 도시를 걸을 때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베오그라드는 도시와 걷기의 의미를 다시 알려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예술, 무너진 벽에 남겨진 글자 하나, 오래된 계단,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예술이자 하나의 역사다. 베오그라드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는다. 그것을 거리 위에 드러내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그러니 이 도시에서의 도보 여행은 결코 과거를 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깊고 밀도 높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한 당신은, 이 도시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