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의 보석 같은 도시 코토르. 그 중심에는 수백 년 동안 도시를 지켜온 고대 성벽이 있다. 이 성벽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중세 도시의 구조와 방어 전략, 사람들의 삶이 깃든 공간이다. 1,35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며 펼쳐지는 코토르만의 풍경은 아드리아해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며, 성벽 위에서 마주하는 도시의 전경은 평생 기억될 만한 감동을 선사한다. 등반 팁부터 풍경 포인트, 역사적 배경과 심리적 여운까지, 이 여정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경험’이다.
중세의 흔적 따라 걷는, 아드리아해의 시간 여행
유럽의 바다 중에서도 아드리아해는 유독 고요하면서도 짙은 인상을 남긴다. 이 바다는 흔히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해안선만 연상되지만, 그 남단에는 몬테네그로라는 매혹적인 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 몬테네그로의 숨은 진주, 코토르는 여행자들에게 있어 그 자체가 ‘시간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지만, 이곳은 수세기 동안 상업, 군사,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코토르의 구시가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던 공간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로 작은 성당과 광장이 이어지고, 붉은 지붕 아래선 지금도 주민들이 살아간다. 그 위로 감싸고 있는 것이 바로 ‘코토르 성벽’이다. 이 성벽은 해발 약 260m에 달하는 산 지오반니 요새(San Giovanni Fortress)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석조 방어시설로, 도시의 배후를 지키기 위한 목적에서 수백 년간에 걸쳐 확장되고 보강되었다. 단순한 성벽이 아니라 코토르 사람들의 생존과 방어의 상징이었던 이 구조물은 오늘날에는 여행자들이 그 위를 걸으며 도시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으로 변모하였다. 코토르 성벽 등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약 1,350개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플 수 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시야는 넓어지고 풍경은 장엄해진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코토르만의 곡선, 붉은 지붕의 파노라마, 그리고 푸른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평생 잊히지 않을 풍경으로 남게 된다. 등반 중에는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순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풍경 속에 중세의 흔적, 고대의 전략, 그리고 현대인의 감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에서 ‘시간’을 느끼는 일이다. 코토르 성벽은 바로 그런 공간이다. 고대 로마의 흔적, 베네치아의 향기, 오스만의 위협, 그리고 지금의 평화를 모두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시간의 길’이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성벽의 코스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위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감정의 흐름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이 여정이 왜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남게 되는지를 풍부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아드리아해와 도시,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이어지는 이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성벽 위를 걷는 여정, 감동을 만나는 포인트들
코토르 성벽 트레킹은 구시가지 북문 근처에서 시작된다. 입구에는 성수기 기준 8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여정은 그 몇 배의 가치를 지닌다. 성벽은 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구성된 도시의 구조와도 일체감을 이룬다. 첫 번째 구간은 초입부터 경사진 돌계단이 이어진다. 비교적 그늘이 없고 햇볕이 강한 구간이므로 오전 이른 시간이나 해 질 무렵에 오르는 것이 좋다. 약 15분 정도 오르면 첫 번째 포인트인 ‘성 루카스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코토르 구시가지가 하나의 구조물처럼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는 모습이 드러나고, 그 너머로 아드리아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붉은 기와지붕과 돌담, 종탑의 실루엣은 조용히 여행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 다음 구간에서는 작은 쉼터와 음영 공간이 등장하는데, 바로 ‘성 조반니 예배당’이다. 이곳은 과거 수도사들이 거주하며 기도하던 장소로, 지금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돌길 옆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조용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 앉아 물을 마시거나 도시를 바라보며 묵상에 잠긴다.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수세기 동안 쌓인 습기와 돌의 냄새가 살아 있는 역사로 다가온다. 이후 가장 가파른 구간이 시작된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계단은 발끝을 조심스럽게 디뎌야 하며, 곳곳에 작은 전망대와 정자 비슷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시야가 점점 넓어지며, 코토르만이 마치 호수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바다라기보다는 산속 깊숙한 호수 같은 느낌을 주는 이 풍경은 ‘코토르만은 바다가 아니다’라는 지역 주민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정상인 ‘산 지오반니 요새’에 도달하면, 모든 피로는 눈앞의 풍경 앞에서 잊힌다. 요새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당시 군사적 전략과 방어를 고려한 지형적 특성이 반영된 역사적 건축물이다. 무너진 성벽 일부와 바위 위에 설치된 망루, 감시 초소, 대포 터널 흔적 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코토르의 전경은 실로 장관이다. 도시와 바다, 산과 하늘,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시선 안에 담긴다. 등반 후 하산할 때는 동일한 루트를 따라 내려오지만, 보이는 풍경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오르며 보지 못했던 도시 바깥쪽의 시골 마을, 바위에 핀 들꽃, 바다의 반사광이 더 크게 느껴진다. 등반 전과 후의 감정의 온도차는 여행의 깊이를 증명한다. 트레킹 후에는 구시가지의 작은 카페에 들러 현지 맥주인 ‘Niksicko’를 마시거나, 해산물 요리를 맛보며 진한 피로를 달랠 수 있다. 특히 성벽 트레킹 후 마시는 차가운 물 한 병, 단 한 모금조차도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될, 짧지만 깊은 여정
코토르 성벽에서의 여정은 비록 반나절이면 끝나는 코스지만, 여행자의 기억 속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이미지로 남는다. 그것은 단순한 경관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낀 감정과 교차되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 때문이다. 성벽 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숨을 고르고, 아래를 바라보며 삶을 되돌아본다. 저 아래를 걸었던 사람들, 지금도 그 안에 살아가는 주민들, 그리고 그 벽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의 발끝까지. 시간은 평면이 아니라, 층층이 쌓인 레이어임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코토르 성벽은 우리가 '여행지'라 부르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관광 명소, 포토존, 랜드마크라는 단어로 포장되기엔 이곳은 너무나 진지하고 깊다. 그것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박물관과 같다. 오로지 이 여정 위에서만 가능한 체험이며, 오직 직접 걷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다음 여행을 고민 중이라면, 바쁜 유럽 대도시 대신 코토르를 선택해보자. 바다는 고요하고, 성벽은 굳건하며, 사람들은 여유롭다. 그리고 당신은 그 위에서 특별한 하루를 살아내게 될 것이다. 그날의 해질녘, 요새 위에서 바라본 코토르만의 빛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 빛은 돌아온 후에도 문득문득 떠오르고, 다시 이곳을 꿈꾸게 만든다. 그것이 진짜 여행의 힘이다.